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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요지를 잘 파악해주시기 바랍니다.

없는 형편에 남의 나라에 가서싸워야 했던

우리 할아버지들을, 조상들을

싸잡아서 매도하는 게 아닙니다.

그분들의 공로는 공로로써 인정하되,

그분들이 지은 죄는 인정하고

우리의 후세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서

우리역사를 바로 보고 반성하여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자는 데 있습니다 !

민간인 학살이 극소한 범위에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민간인 학살은 학살이고 죄는 죄니까 !

30여년 전 한국은 아무런 원한도 없고 싸울 이유도 없는 베트남 땅에서

양민을 죽이고 마을을 짓밟는 비극을만들었다.

피의 대가는 미국에 의해 현금으로 지불됐고 그 돈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뚫었지..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일은 점차 우리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지만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 비극의 잔재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일본인들은 일제 침략의 야만성과 인류사적 범죄인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자학으로 규정하고,
일본의 청소년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
자존의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지 부정적인 역사를 가르칠 수 없다고주장한다.

그래서아시아 ‘침략’을 ‘진출’로 바꾸었고
일본군 위안부 사건을 역사기록에서 삭제하고
또 난징대학살 사건을 왜곡하는 행위를 마다하지않는다.


일본의 내일이 어두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범국가로서의 반성이 없다는 것,죄의식이 없다는 것은
지난날의 역사적 범죄를 되풀이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역사가 아름다워지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반성력에 있다.
반성력이 죽은 역사는 위태롭고 반성력이 죽은 역사에는 내일이 없다..

(물론 일본과는 전쟁 수행 목적이나 수행과정에서의 방법상 잔인함 학살한 양민들의 수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일본과 똑같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역사를 바로 알려고 하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올바르게 후세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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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


베트남전 24돌에 돌아보는 우리의 치부, 베트남 전범조사위의 끔찍한 기록들

전쟁은 이런 곳에서도 일어났을까.

한낮의 태양에 달구어져 엿가락처럼 휘어버릴 듯한 거리엔 허리를 곧추세우고

자전거를 달리는 여학생들의 하얀 아오자이 자락이

무거운 바람 속을 구름처럼 떠돌기도 한다.

과연 우리는 저토록 가녀린 몸피의 여인들에게까지 총부리를 들이댔을까.

이성은 간데없고 광기만이 오롯이 남은 인간들이 저지른 살육의 현장,

그 아픔의 속살을 헤집으려 나서는 한 ‘남추틴’(남조선)의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는 중앙선도 없는 아스팔트 위를 끝도없이 달렸다.

살아남은 노스님의 증언

"1969년 10월14일, 베트남 남부 판랑지역에서 남한 군인들이 린선(Linh Son)사 스님들을 향해 총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이공의 보고에 따르면 남한군 한명이 린선사에서 베트남 여성을 희롱하다 주지승에게 쫓겨나자 이에 격분, 동료들을 몰고 와 총기를 난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AFP 통신>

이 사건으로 71살의 주지승, 69살의 노승, 41살의 여승, 15살의 행자승 등

4명이 사망한 사실을 베트남 정부가 공식 하였다.

(사진/당시 린선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푸 스님.)

당시 유일한 생존자인 푸(78) 스님과 현장 목격자인 응웬티유엔한(45)을 만났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내 필자를 짓누르곤 했던 불안이,

부인하고만 싶었던 이야기가 눈앞에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아이건 산모건 사정없이…

(사진/'잊고싶은 전쟁'. 한국군에 죽은 베트남인의 숫자는 공식통계로만 4만1450명이다.)

“따이한 군인들이 먼저 스님들을 향해 총을 쏘았어요.

이어서 살려달라며 달아나는 여자 보살님에게도 총을 쏘았지요.

그리고는 시체를 모두 불태웠어요.” 유엔한의 증언이다.

당시 겨우 15살이던 그는 두려움에 질려 고함도 지르지 못하고 숨어만 있었다고 고백한다.

린선사는 모두 다섯 스님이 거처하는 자그마한 절이었다

.그때 푸 스님은 주지스님보다 먼저 마을에 내려가 초상집에서 독경을 읽고 있었다.

증언의 대부분은 유엔한을 통해 이뤄졌고,

그 절의 유일한 생존자인 푸 스님은 말이 없다.

당시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람들은

그때 그 학살의 주인공인 따이한의 후예들을 살뜰히 배려한다.

시원한 차를 내오고, 과일을 깎아 권하고, 파파야를 먹느라 지저분해진 입을 닦으라고

물까지 받아다 줄 때는 울컥 눈물이 솟았다.

푸 스님이 마을에서 돌아왔을 때 절은 이미 난장판이 돼 있었다.

푸 스님은 불에 그을린 다섯 스님의 시신을 인근의 아오방 절로 옮겼다

시신탈취에 대한 불안에서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판랑지역 전역의 학교가 휴학을 결의했고,

학생들과 불교도들이 일제히 봉기에 나섰다.

“베트남 정부는 양민학살을 즉각 중단하라!”

“따이한은 베트남을 떠나라” 등등 피맺힌 함성이 온통 판랑을 휩쓸었다.

절 옆으로 당시 죽음을 당했던 스님들의 유골이 모셔진 3층탑이 있다.

우리 일행은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스님들의 명복을 빌었다.

"여성 돌아가며 강간한 뒤 살해"

한국군은 잔혹한 대량학살을 일삼아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조차

가급적 직접적인 교전은 피하려 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전선도 없고 적이 누군지도 모르는 베트남전에서

베트콩의 근거지를 수색, 파괴한다는 작전상의 명분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학살행위를 정당화시켜 주었다.

1965년 12월22일, 한국군 작전병력 2개 대대가

빈딘 성, 퀴년시에 있는 투이프ㄱ 군, 프ㄱ호아 사(使), 턴지앙 촌에

500여발의 대포를 발사한 뒤

“깨끗이 죽이고, 깨끗이 불태우고, 깨끗이 파괴한다”는 구호 아래

수색소탕작전을 펼쳤다.

그들은 이 마을에서 12살 이하 22명의 어린이, 22명의 여성, 3명의 임산부,

70살 이상 6명의 노인을 포함, 50여명이 넘는 양민을 학살했다.

(깨끗이 죽이고, 불태우고, 파괴한다는 것은 일제시대 때

일본이 남한의 의병들을 토벌하는 남한대토벌에서도 쓰인 작전이다..

이럴 수가 있나. 그토록 일본군에게 끔찍이 당해놓고도

그 피눈물 나는 역사를 경험해놓고도

어느새 우리는 일본인과 똑같이 잔악한 범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랑은아이를 출산한 지 이틀 만에 총에 맞아 숨졌다.

그의 아이는 군화발에 짓이겨진 채 피가 낭자한 어머니의 가슴 위에 던져져 있었다.

자궁이 밖으로 들어내져 있었다.

남한 병사는 한살배기 어린아이를 업고 있던 찬도 총을 쏘아 죽였고,

아이의 머리를 잘라 땅에 내동댕이쳤으며,

남은 물통은 여러 조각으로 잘라내 먼지구덩이에 버렸다.

그들은 또한 두살배기 아이의 목을 꺾어 죽였고,

한 아이의 몸을 들어올려 나무에 던져 숨지게 한 뒤 불에 태웠다.

그리고는 12살 난 융의 다리를 쏘아 넘어뜨린 뒤 산 채로 불구덩이에 던져넣었다…"

한국군의 대량학살이 자행된 곳에는 아이들의 입에 캔디나 케이크가 물려 있었다.

노인들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마을사람들을 안심시키면서 한곳으로 모으는 한 수단이었던 듯하다.

다낭에서 남쪽으로 23km 떨어진 쿠앙남성의 디엔반현.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이곳 탄쿠잇다리(디엔탕사)에서 지압바다리(디엔안사)에 이르는 구간을

‘단명의 길’이라 부른다.

디엔안 양민학살 현장의 또다른 생존자 쩐티득(72) 할머니(응웬수 할아버지와 사돈관계)를 만나러 가는 길.

수 할아버지가 차창 밖을 가리키며 “바로 여기야”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가봐도 땅이 도톰하게 솟아 있는 듯 느껴질 뿐,

봉분도 없는 무덤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군들이 물러가고 난 뒤, 마을사람들이 시신을 들쳐메고

길게 열을 지어 키엠루 초소를 찾아갔어.

만장도 없고, 그 흔한 눈물도 없고,

다들 넋이 나가서는 곡성도 풀어놓질 못했지….”

주민들은 남베트남 정부군 초소 앞 도로 양옆으로 시신을 늘어놓고

남조선군의 초소에 가서 호소했다.

그러나 초소의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파리떼가 하늘을 새까맣게 덮을 무렵에야 초소 군인들이 빗장을 열고,

장례에 쓸 널빤지와 천을 내주며 사태수습에 나섰다.

이미 부패해 진물이 줄줄 흐르는 주검은 다시 마을로 옮겨지지 못하고

도로변에 그대로 묻혔다.

“널빤지와 천으로 시신을 묻을 순 있어도

우리 디엔안 주민들 가슴속 원한이야 어찌 묻겠누….”


(사진/풍넛촌 생존자 응웬수 할아버지)

과연 그대들에게 진정한 반성은 있는가

우리에게도 베트남전은 잊고 싶은 전쟁이다.

한국은 1964년 의료지원단과 태권도 교관 등 270여명을

사이공 남쪽 붕타우에 파견함으로써 베트남전에 군사적인 개입을 시작했다.

이후 65년에서 73년까지 약 30만명의 전투부대를 ‘베트남 정부의 요청’이라는 미명 아래 베트남전선에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들도 4960여명이 전사했고 10여만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한국군은 또한 적군인 베트남인을

4만1450명이나 죽이는 전승(?)을 거두기도 했다

아군 사망자수의 10배에 이르는 적군을 전사시킨 것이다.

그것도 공식적인 통계상으로만!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상처받은 ‘오늘’을 치유하는 과정 없이는

우리에게 미래가 없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양심에 칼을 대는 아픔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할지라도.

역사는 우리에게 의문부호 하나를 던져놓는다.

과연 그대들에게 진정한 반성은 있는가.

<한겨레 기사 편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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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식 침략이나, 약탈을 위해 전쟁을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정식으로 월남공화국 요청으로 가게된 것이다.

허나 우리나라가 제국주의 팽창주의 논리에 입각하여 침략한 것이 아니더라도,

미국과 베트남의 요청에 의해 파병된 것이 아니더라도

민간인을 대상으로 살인을 하고 방화를한 것은 엄연한'테러'가 아닌가.

파병시 '우리나라는 베트콩 한 명을 잃을 지라도

베트남 국민을 보호한다'는 조약이 엄연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을 강간하고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을죽였다는 것은

우리가 인정하고 책임져야 할 엄연한 우리 '대한민국의 죄'이다.

물론 우리는 일본과 달리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김대중대통령과 노무현대통령께서 직접적으로 유감표명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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