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가끔씩 과거의 연인이 생각날 때가 있다.
길거리에서 그 사람의 향수 냄새를 맡는다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라
TV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를 우연히 보게 되면
노래가사처럼 ' 좋아보여, 잘 지내나봐 ' 라는 말이 절로 흘러 나왔다..
물론 그러한 모습 조차도 가식적인 모습이란 걸 알기에.
굳이 뛰어난 관찰력이 아니더라도
함께했던 긴 시간만큼 그녀의 표정 속 진심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한편으론 묘한 감정이 들곤한다.
'정말 잘 지내는 걸까..?'
최근 섹시하고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 '어메이징 스파이더 맨'을 보게 되었다.
170 정도의 키, 색기넘치는 고양이 상의 얼굴, 그리고 타이트한 청바지를 즐겨입는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다리라인 역시 일품이었다. HB점수로는 무난히 7점을 줄 수 있지싶다.
그녀와 두 번의 만남을 가졌고, 서로 바쁜 시간을 보내느라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못 지킨게 미안하다며
도도한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게
'오빠 보고싶어요. 내가 다음에 영화보여줄께요. 오빠 언제시간되요?' 라고
사랑스럽게 물어오던 그녀.
거기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다.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다만.. 뭔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곤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가 옆에서 내 눈치를 보는듯 했다.
하긴..자신을 옆에 두고 그렇게 영화만 쳐다보는 남자가 없긴 했을테니.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어메이징 스파이더 맨의 화려한 액션도.
탄탄한 스토리도 아닌 한 명의 여배우였다.
그녀의 실제 이름은 모르겠다.
단지 영화속에서는 '그웬 스테이시'라고 불렸다.
주인공의 여자친구 역할로 나오는 그녀.
<저 도도한 표정을 보라 >
그녀는 객관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외모를 가진 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 기준엔 못생긴편에 속하는 외모를 가진 여성이었다.
만약, 사진으로 그 배우를 본다면
관심조차 주지 않고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그녀는 섹시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난 그녀가 사랑스러운 이유를 곧 알게되었다.
말을 할때의 느낌.
걸음걸이.
사랑스럽거나 당황할 때의 표정.
경박하거나 천박하지 않은
그렇다고 도도하거나 까칠하지도 않은
사랑스러운 말투.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눈빛까지..
< 나는 이 장면의 그웬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
이 모든것이 내가 사랑했던
그녀와 닮아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니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나는 그웬 스테이시를 보고 그녀를 떠올리며
내 옆의 여성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불현듯 한 명의 여성이 더 떠올랐다.
'Hi-there'라는 어플을 통해서 알게 된 한명의 여성.
사진을 통해서 본 그녀는
섹시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는
청순하고 참한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사진과 함께 적어놓은 글귀에서
가볍고 야한 농담보다는
진지하고 건설적인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풍기는 그 여성은
책과 비오는 날을 좋아하고
혼자서 영화보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물으며
그렇게 연락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오늘 하루가 힘들다며 내게 투정을 부렸다.
나는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선물'을 줄테니
힘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퇴근시간에 맞춰서
음성메세지를 보냈다.
' 오늘 고생했어요. 힘들어도 이거 듣고 힘내요. 화이팅! '
그녀는 내 음성을 듣고선
답해왔다.
'실제로 들려주면 더 좋을텐데..'
그렇게 전화번호를 받은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 시간 반을 통화했다.
전화기가 뜨거워질만큼.
거기에 대고있는 귀가 뜨거워질만큼.
그리고..
서로의 마음이 뜨거워질만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는
왠지 모르게 내가 사랑했던 그녀와 비슷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사랑스러웠기때문에..
하지만. 우리는 쉽게 만나지 못했다.
서로 만나자고 말은 했지만
섣부르게 누구하나 나서지 못했다.
내게 그녀가 조심스러운 상대였던 것처럼
그녀도 내가 조심스러웠을꺼라 생각한다.
하루에 한 번 연락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이틀에 한 번 연락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4일에 한 번 주기로 연락을 했다.
최근 한동안 비가 많이 왔을때.
문득 그녀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 비 맞으면서 걸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요. '
나도 그녀도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서로 웃었다.
그리고.. 드문드문 연락하던 어떤 날.
바로 저번주 토요일.
그녀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물론, 토요일이라
그녀뿐만이 아니라 그녀를 포함해서
총 다섯명이 연락을 해왔다.
'오빠 오늘 친구랑 2:2로 같이 술 먹을래?'
'오빠 보고싶어요. 나 친구랑 있는데 같이 놀래요? '
'오빠 오늘 뭐해요? 영화볼래요? '
'형 같이 클럽가요.'
그녀 역시 내 안부를 묻다가 살이 빠졌다는 내게
맛있는 거 혼자먹지 말고 같이 먹자며
넌지시 보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술 마시고 클럽가는
반복적인 픽업의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채워줄 무언가를 가진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밤 11시에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정해졌다.
조금 더 걸릴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하는 그녀는
앙증맞게도 내가 자신을 못 찾을까봐
'레드 슈즈'를 신고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된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나는 그날 심히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약간 걱정이 되었다.
하루 종일 배탈이 나서 화장실만 들락거리기를 다섯번.
맛있는걸 먹자곤 했지만 도저히 뭔가를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몸도 안 좋고. 조심스러운
그녀와의 F-close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녀와 '심야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며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버거킹 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나를 한 번에 알아보았고.
나도 그녀를 한 번에 알아보았다.
빨간색 킬 힐을 신고 온 그녀는 늘씬한 다리 라인과는 상반되는
사진에서의 느낌 그대로 참하고 청순한 외모와 순백의 드레스 같은 상의를 입고왔다.
픽업을 하면서
누군가를 만나면
환하게 웃는 버릇이 없어졌는데
이는 후천적인 나의 노력의 결과로
나의 상태를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그녀도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본 것이 신기했는지
아니면 그 어떤 느낌이 있었는지
환하게 웃었다.
그녀와 함께 강남역 CGV로 걸으며
함께 보기로 한 심야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딘: 난 다크나이트는 봤는데.. 도둑들 봤어요?
HB: 네...저는 둘 다 봤어요..
딘: 그럼 연가시 봤어요?
HB: 네..
딘: ...안 본게 뭐에요? ㅋㅋㅋ
HB: 아...최근에 개봉한 거 다 본 것 같아요 ㅋㅋㅋㅋ
결국 심야영화는 포기하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 커피숍에 들어갔다.
시간은 12시 10분전..
내가 자주가는 커피빈의 마감시간은 12시..
우리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커피빈을 나왔다.
HB: 어떡하죠?
딘: 음...
HB: 음....
딘: 맥주 한잔 할래요?
HB: 음....
딘: 왜요? 맥주 별로 안좋아해요?
HB: 아뇨.. 소주보다는 괜찮아요. 조금 정도는..
그렇게 우리는 맥주창고에 들어갔다.
보통 애프터를 할 때 가는 룸식 주점이 아닌
그런곳에서 이 여자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개방되고, 조금은 시끄러운.
Sexual 하다고 하기엔 거리가 먼.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와 나의 대화는 처음엔 함께 좋아한다고 했던
'책'을 주제로 시작되서
'꿈'으로 이어졌고
다시금 '성격'에 관한 이야기로 나아갔다.
마치, 소개팅을 하는듯한 대화양식을 띄고 있긴 했지만
대화의 내용보다.
그런 별거 아닌 이야기를
참.. 사랑스럽게 말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문득 말했다.
'혹시.. 누구 닮았다는 소리 안들어요?'
그리고 나는 '그웬 스테이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도 스파이더맨을 보았고
서로가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이미지는 다른 것이었지만
나는 그녀와 내 앞에 있는 그녀가 닮았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참 사랑스럽다고 말을 해주었다.
조잘조잘. 가끔씩 함박 웃음을 지으며
사랑스럽게 웃던 그녀는
어느새 수줍어하는 소녀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말 없이 서로를 바라 보았다.
순간.. 주변의 모든 소음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속에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 손... 잡고 싶어'
그녀는 어쩔줄 몰라했고..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진 내 손과
그녀의 차가운 손이 만났다.
'오빠.. 손이 참 따뜻하네요..'
그렇게 손을 잡고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별거 아닌 사소한 이야기에 킥킥 거리며..
왠만해선 하지 못할 심각한 이야기도 서로에게 해가며..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우리는 맥주 한병만을 마셨을 뿐인데..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조잘대는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그런 나의 눈빛을 느꼈는지.. 갑자기 조용해 진다.
나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지금이 키스할 수 있는 타이밍 이라는걸....
하지만.. 나는 내 주머니에서 립글로스를 꺼내
그녀의 입술에 발라주었다.
그녀는 순간 아무말도 못하고 나만 바라보면서
내가 하는 행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 발라주고 나서 나는 그녀를 향해 웃었다.
그녀도 나를 향해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동안 말없이 웃었다.
그리고 언제그랬냐는 듯이 우리는 다시 밝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보였고
나 역시 그녀와 헤어지긴 싫었다.
막상 그녀와 뭘 하려고 한건 없었다.
그냥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고
그녀도 그럴꺼라 믿었다.
만난 시간은 아주 잠깐뿐이지만.
그 어떤 애틋함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리고 그 애틋함을 놓치기 싫었기에..
나는 그녀에게 나의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나의 감정을 느끼길 바랬다.
' 애 틋 함 '
그 한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서 나는 참 많은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그 감정을 느끼고 싶다고 했다.
그녀와 나는 술집의 마감시간이라는 3시가 되어가자
이제 뭘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헤어진다' 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공포영화를 보자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고민도 없이 강남CGV로 향했다.
최근에 나온 공포영화가 있다며 그녀는 내게 그것에 대해
말하고 핸드폰을 통해서 보여줬다.
하지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게
CGV에 도착한 우리앞에 볼 수 있는 영화는
두 가지 뿐이었다.
'다크나이트' '도둑들'
우리는 허탈해 하면서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게 '오빠 간절히 원해봐요, 그럼 볼 수 있을지 몰라요.' 라고 했다.
나는 그냥 멋쩍게 웃으며 ' 정말? ' 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진짜에요 오빠. 믿으면 된다니까요' 라고 했다.
우리는 이런 말도 안되는 사소한 장난을 치며 서로 킥킥거렸고
다시 CGV를 나와서 강남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나가다 눈에 보이는 DVD방에 들어갔다.
약간의 망설임을 감추고..
우리는 DVD방에서 공포영화를 골랐고,
영화 한편을 틀어놓고 나란히 누워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심장이 뛴다. 그리고 그녀의 심장이 뛰는 것도 느껴진다.
아직. 귀신도. 살인자도. 그 어떤 무서운 것도 스크린에 나오진 않았다.
다만. 그녀와 나만이 어둡고 조용한 이 공간에 함께 있다는 사실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이..
그녀에게 다가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굳이 경험과 지식이 아니라도
나는 그래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그녀도 그걸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공포영화를 틀어놓고
멜로 영화를 찍고 있었다.
물론.. 15세 버젼으로...
그녀의 입술은 생각대로 달콤했으며
그녀의 몸짓은 생각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녀와의 첫 경험을 DVD방에서 하고 싶진 않았기에
그녀에게 '오늘 밤 함께 있자'라고 했다.
그녀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녀를 다시 품에 안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녀도 나도 영화내용에는 관심이 없었고
단지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에..
그녀가 내 품안에 있다는 느낌에..
그가 날 감싸고 있다는 느낌에..
행복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날 감싸고 있던 그녀의 손이 스르륵 풀렸다.
내가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가 내게 졸린 눈을 하며
' 오빠 품이 너무 편한가봐. 좋아.'
하며 다시 내 품으로 파고 들었다.
아.. 사랑스런 그녀를 꼭 껴안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서 잠들지 말고 가자. 오빠가 재워줄께.'
그렇게 그녀와 나는 손을 잡고 MT로 향했다.
토요일 밤이라 처음 MT에는 방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되진 않았다. 방이 없다는 사실이
ASD를 올리지도 않았고
단지, 우리가 함께 걷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 주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밤새 황홀한 시간을 함께 했다.
그녀는 잠결에서도 내 품으로 파고들며
' 오빠 너무 좋아요. 난 오빠 계속 만나고 싶어요 ' 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오늘도 그녀는 내게
나를 위해 찍었다며 자기 사진을 보내왔다.
내가 보고싶다며.
오빠도 내가 보고싶을 꺼 같아 보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