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GLC - 성공 스토리






- 작성자 : 이노베이터(IMFGLC 칼럼니스트)

 

 



 

마지막 칼럼

 

- IMF의 전설. 그리고 그 비하인드 스토리, 이노베이터와 픽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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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픽업에 눈을 뜨다

 

사실상 첫 픽업 당시의 상태는 아마도 IMF 내에서, 아니 대한민국 모든 픽업계를 망라하더라도

하위 10%에 머물러 있었음이 분명했다. 여성들은 나의 대쉬를 강하게 거부했고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의 라이프스타일은 여성이 보기에 정말 끔찍한 재앙이었을 것이다)

주위는 나의 무엇이 문제인지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고 뜬구름 잡힌 소리를 하거나

심지어는 주변인들조차도 나와 피차일반의 상태여서 환경적으로 분명 최악에 있었음이 분명했다.

(지금도 내 지인들의 상당수는 그러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지금의 나는 내가 속한 집단에서 '별종'이 되었다.)

 

내가 픽업을 접한것은 '대한민국 픽업의 역사' 그 자체인 '이단헌트'와의 인연에 있다.

2005년, 2006년도 국방부 인트라넷에서 사실상 군부의 시선에서 방치된 한 자기개발 커뮤니티에

놀라운 글들이 연재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성을 유혹하는 방법을 체계화하려는 '픽업 메쏘드'에 대한 소개였다.

이에 열광한 것은 본인 뿐이 아니었고, 나는 이때부터 '대한민국 픽업 신화'를 목격하는 놀라운 기회를 겪은 것이다.

 

본인과 이단헌트는 픽업이라는 신선한 정보에 놀라움을 느끼는 것은 물론,

각자가 지녔던 이성관계의 고민을 단숨에 돌파해줄 수 있는 돌파구임을 확신했다.

(여기에 이단헌트는 픽업을 개인의 발전을 넘어서서 하나의 거대한 커뮤니티를 생각해냈다)

 

아마도 이단헌트와 본인이 그간 인트라넷에 떠도는 해외 메쏘드들을 최초로 적용해 본 기회는

운 좋게 서로 일치시킬 수 있었던 상병휴가에 있다.

그날의 사건은 지금은 픽업계의 전설이 되어버린 '원데이 3런' 이 되었다.

 

그는 클럽이 익숙하지도 않았고, 춤추는 방법을 알지도 몰랐고 지금에 비하면 형편없는 스타일이었음에도

본인이 지닌 아우라를 활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의 이단헌트는 타인에게 범접하기 힘든 상당히 무거운

아우라를 뿜어내는 성향이 있었는데 이것이 당시 속칭 양아치 포스의 가벼운 이들과 차별화를 하는데 효과적이었고

첫 픽업 시도에서 단숨에 전설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 전설의 살아있는 목격자였고 그의 플레이를 가까이 볼 수 있었기에

이를 나만의 메쏘드를 만들어가는데 적극 반영하기위해 노력했다.

이후로 그와 나는 개별적으로, 또는 함께 메쏘드를 꾸준히 발전시키고 실험 및 검증을 했다.

(통계적 접근을 위해서 하룻동안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프로치를 하며 멘트의 승률을 검증하기도 했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떄로는 서로 도우며, 떄로는 각자 메쏘드를 연구해왔다.

그리고 사실상 그와 나는 거의 동일한 답에 도달하게 된다.

 

결론?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멘트는 중요하지 않다. Context가 중요하다.

그것은 이단헌트의 놀라운 통찰력과 본인이 선호하는 과학적 실험을 통해서도 여실히 증명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Context는 어떻게 개발해야 하나?

이단헌트는 그에 대한 답으로서 이너게임을 제시했고

나는 검증의 필요조차 없이 그것이 명쾌한 답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픽업 메쏘드를 검증하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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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MF의 등장

 

사실 IMF가 국내 최초의 픽업 커뮤니티라는 오해가 있긴 한데,

국내 초창기의 픽업 커뮤니티들은 지금의 픽업 커뮤니티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소규모에

누가 고수인지 구분조차 불분명한 암흑기였다. 당시의 커뮤니티들의 모임은 어떻게 보면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검증되지 않은 방법들을 가지고 탁상공론이 되기 쉽상이었다.

이단헌트는 인트라넷에서 국내 최초라고할만큼 픽업의 세계를 전파했던 그분을 포함해서

수차례 극소수로 활동되고 있는 여러 커뮤니티들에서 활동해본 결과, 아무래도 그떄 당시에는 자기 자신만큼

픽업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지닌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지금와서보면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평생 살면서 그처럼 열정적으로 일하고 연구하며, 누구에게서든 배우려는 자세를 지닌 사람을 본적이 없다.

 

그리고, 몇몇 사이비들이 누가 원조니 운운하지만

픽업메쏘드에 이너게임을 비롯한 개인 혁신을 통합해낸것은 IMF가 최초이며

이를 충실히 지켜오는 커뮤니티는 현재조차도 IMF가 유일무위하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나는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잊혀졌을 당신들의 화려한 과거를 다시 언급하는 수밖에 없다.)

 

어쨋든, 그렇게 IMF가 시작되었고, 이단헌트의 방법은 지금의 완성된 수준의 메쏘드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음에도 국내 어떤 곳과도 비교할 곳이 없었으니 그간 존재하던 수많은 소규모 커뮤니티의

회원들이 차츰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때가 바로 IMF의 태동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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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IMF의 비상

 

초기의 IMF는 메쏘드의 독특함에도 불구하고 회원 규모가 크지 않았다.

기존의 커뮤니티는 호빠와 룸싸롱 및 나이트클럽 웨이터 출신 등에 의해 주도되고, 그 방법 또한 그런 업소들에서 파생된

천박한 방식을 한국적인 작업 방식이랍시고 통용하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주류인 안타까운 상태였다.

 

이때, 국내 픽업계는 모 케이블 방송에 의해 거대한 위기와 놀라운 비상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자세히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후로 작업의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고,

거의 모든 커뮤니티가 양적으로 팽창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 양적 팽창을 유지할 수 있는 커뮤니티는 얼마 없었다.

대부분의 커뮤니티는 이전에도 그러하듯, 오랫동안 답습되어오던 사회적 도의에 어긋나는 방식들을

대중들에게 납득시키는데 실패했고, 도리어 여성 커뮤니티에 그들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비난의 화살이 되었다. (이를 노이즈 마케팅으로 활용한 곳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IMF는 원칙에 충실했다.

원칙이란 절대 불변의 법칙이므로 고작 여론과 소문따위에 영향받을 수 없다.

우리는 회원들에게 차별화된 메쏘드, 도덕성에 흠을 내지 않는 매쏘드, 자신을 혁신시키는 매쏘드를 제시함으로서

타 커뮤니티에 실망하고 온 사람들을 수용하면서  반사이익을 얻었고,

이는 IMF가 만단위 이상의 대형 커뮤니티로 비상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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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MF의 위기

 

규모가 커진 IMF는 인재를 발굴해내기가 훨신 쉬워졌다.

문제는, 규모가 커지면서 IMF를 대표하는 이들은 보다 높은 기대치를 충족받아야 했고,

때로는 회원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검증해 보여야 했다.

 

결과는 전폭적 교체

 

이때의 산통은 특히 스텝 대다수와 고르게 관계를 지니고 있던 본인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주고 끝났다. 나도 상심이 컸기 때문에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에 기존의 방식을 여전히 답습하거나 IMF를 따라하기 급급하던 커뮤니티들은

마치 이때다 싶었는지 벌떼처럼 연합하여 헐뜯기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가관이었다.

성범죄자가 도덕을 운운하고 배끼기의 고수가 저작권을 운운하며

이기는 편이 내편이라는 박쥐들이 득실대는 작태는 국내 픽업계가 말 그대로

'청소'되어야 할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IMF의 리더십은

주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실력 있는 사람이 강의를 한다'는 원칙과

'따라하기보다는 앞서간다'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서 더욱 크게 비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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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놀라운 비상

 

위기를 넘긴 IMF는 회원들에게 IMF의 가치와 신념, 탁월한 메쏘드를 납득시키는데 성공했다.

위기가 기회라고 하더니 숨겨진 고수들을 잔뜩 발견하는데도 성공했다.

그간의 노하우의 축적은 메쏘드를 보다 진보시키는 것은 물론

이단헌트의 경영능력의 진보는 홍보, 운영, 품질, 서비스, 기획력 등 전반에 걸쳐서

IMF가 비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가 꿈꾸는 IMF와는 아직 한참 멀었지만

지금 IMF는 명실공히 세계에서 인정받은 대한민국 대표 커뮤니티가 되었고

구루들이 득실대는 '무서운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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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새로운 도전?

 

도전이라고 불릴만할지 의문스러운 자들이 분쟁을 조장하고 있다.

사실 누가 무슨 일들을 일으켰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이단헌트가 픽업을 시작했던 그순간부터 무려 7년 가까이를 지켜보고 있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것이다. 그런 거짓 꼬장같은 것으로 흔들릴 IMF가 아니다.

결과는 볼 필요도 없고 진실이 밝혀지는 속도가 빠를수록 예측된 결과에 빠르게 수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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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리고 나의 도전

 

7년간 나도 멍청하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처음 3-4년은 그의 메쏘드와 그 자체를 중요한 롤 모델로 인지했다.

처음에는 꽤 효과가 있었지만, 금세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는데,

이는 이단헌트와도, 대다수의 트레이너들과도 내가 근본적으로 '너무 다른 사람'이기 떄문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외모? 스타일? 목소리? 성격? 그런 것만으로 언급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나는 갈망하는 것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어쨋든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단헌트의 그늘'에 있다가는 내가 비약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20년 가까운 인연을 나눈 평생지기이자 탁월한 사업가였고 픽업의 일인자이자 비젼을 제시할줄 아는 리더였지만

IMF에서, 픽업계에서, 그의 조력자로서, 내가 최고가 될 수 있는게 무엇인지는 회의적이었다.

 

보통은 구루들을 참조해서 단점을 보완하는것이 장점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지만

나는 내가 단점을 보완하더라도 보완되는 수준에 한계가 있음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고

이제는 내가 잘하는 것을 더욱 잘해야 성공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가장 나다운 방식을 찾기 위해 여러차례 방황을 했고, 어느정도 실마리에 다가섰다.

 

우선 나는 즉시 로드와 나이트게임을 중단했다.

나도 물론 몸매가 훌륭한 낯선 여성들을 보면 남자로서 욕망이 이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일단 그녀들과 대화를 나누면 나는 순식간에 그녀들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고

솔직히 말해서 여성들의 몸에 손을 대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단순히 임신 따위의 문제를 떠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 지금 지금 하고 있는게 무엇인지 대한 의문, 

하루 즐기려는거야 라고 생각하기엔 자꾸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자신을 어쩔 수 없던 것이다.

결국 그것은 나의 천성, 나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려는 것이었다.

실전이 반복될수록 성공율은 높아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거리에서의 유혹에 회의감을 얻었고

내가 절실히 원하지 않는 여성의 몸을 가지는 행위 자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은 '원하지 않는 게임'을 포기함으로서 내 스스로에 회의감이 드는 그런 감정들로부터 해방되었다.

 

나는 내 스스로에게 떳떳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에만 집중했다.

나는 안정적인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기반이 탄탄해질수록 이성을 만나고

유혹할 기회는 자연스럽게 많아질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내 일에 집중했다.

그리고 기회는 늘었다. 이젠 기회를 잘 잡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중단하지 않고 계속 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기존의 게임 방식을 포기했음에도 나는 스타일의 발전을 계속 연구했다.

작년까지만해도 늘 아쉬움이 컸는데

가장 최근의 스타일은 드디어 내 스스로가 만족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었다.

나의 본래 화술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철저한 logic에 의한 무자비한 분석과 비판이었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나의 마음을 흐르는 물처럼 풀어버리는 것이었다.

이는 내가 느끼더라도 상당히 상반된 면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벨런스를 잡아야 했다.

 

우선, 나는 나의 냉혹한 면을 감추지도 내세우지도 않기로 했다.

다만 뱉어야 될말과 삼켜야 될말을 가리기 시작했고 냉혹한 말은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려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꼭 필요한 말보다는 듣기에 좋은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나는 그들이 진심어린 충고에도 결코 변할 수 없다는 진실을 깨닳고는 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말을 해주길 포기했다.

대신 그것이 그들의 한계임을 안타까워하기 시작했다.

 

사석에서는 전혀 다른 대화를 만들어가야 했다.

무거운 대화술, 그러한 아우라를 구축하는 것은 아예 포기했다.

이는 내가 타고난 성품을 변화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임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들떠있는 사람이고, 들떠있어야 했다.

그것을 주변인들까지 들뜨게 하는 힘을 만들었다.

나는 썰푸는 사람이 아니라 진중한 사람이다.

이를 문인들의 지혜를 빌려 상대방에게 미묘한 풍자와 미묘한 언어,

조금은 솔직한 음담패설의 묘미로서 즐거움을 만들어냈다.(생각보다 여자들은 야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는 잘난체하는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걸을 멈추는 것도 불가능했다 -_-

이는 실력을 바탕으로 한 승부욕과 원칙에 대한 확신으로 변모시켰다.

 

또한 나는 침착함과 정중함의 가치를, 겸손함과 경청의 지혜가 지닌 힘을 알고 있었고

이를 부드럽게 조화함으로서 내 자신의 성품을 유지하면서도 보대 긍정적인 모습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여성들은 입체적인 성격을 좋아하는것 같다.

나는 때로는 혼자 잘난맛에 떠들다가도 몇분이 안되서 자신을 낮춰서 누군가의 좋은 점을 찬사하는 이야기를 한다.

때로는 남의 이야기를 잔뜩 들어주다가도 어떤 이슈는 막무가내로 우긴다.

허벅지를 보여달라는 등 개소리(?)를 떠들다가도 밤에는 별과 달같은 사랑을 속삭인다.

그런 나의 모습들을 여성들은 개구쟁이라고 불러준다.

이전에는 내가 딱딱하다 내지는 고지식하다, 모범쟁이라는 말들을 들었는데,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사실, 어느게 진짜 나의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모두 다 나다운 것이다.

나는 특정 단어로서 정의되는 남자가 되길 거부한다.

 

아직 구루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나와 어울리는 사람을 놓칠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추구하는데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지 못할만큼 무능한 사람도 아니게 되었다.

최고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최고를 엿볼 수 있는 근처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점차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진보될수록 내가 특별히 애쓰지 않더라도

주변에 여성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중에 일부와는 애쓰지 않더라도 [어쩌다보니]  #,K,F,M-Close를 하게 되었다.

도리어, 나는 주변 여성들과의 close는 인간관계를 복잡하게 함을 알기에 가까워지는 것을 조심해야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픽업 메쏘드를 연구하는걸 중단했다.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

남의 필레를 보는 것도 그만뒀다. 내 경험들을 회상하는것들이 훨신 짜릿한데 무슨 필요가 있는가?

 

'자신이 꿈꾸던 이상형을 마음대로 유혹해내는 경지'가 궁극의 픽업이라고 한다.

헌데 만약 그런 경지라면 나는 도대체 무엇이 나의 이상형일지 모르겠다.

그러한 경지는 이제 전문가들인 PUA들에게 맡겨두자.

 

보통 손에 잡히지 않아야 더욱 가지고 싶어지는게 아닐까?

지금 만나는 여성도 이제는 픽업메쏘드를 너무 깊게 익힌 나에게는 너무나 뻔히 보이는 수법을 통해 밀당을 하려고 든다

나는 그 뻔한 수법을 알면서도 속아 주고, 역시 내 마음은 뻔히 아는데도 두근두근함을 즐기고 있다.

물론, 언제 밀어야 하고 언제 당겨야 하는지는 결코 잊지 않지만, 흐흐흐~

다행이도 지금의 그녀는 내 이상형에 많이 근접해있다.

 

 

그리고 하루에도 행복감을 몇차례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일도 사랑도 꿈도...

이것은 쾌락과는 다른 느낌이다.

 

 

IMF를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겠다.

하지만 진실을 판단해낼 수 있는 능력쯤은 그대들도 있지 않은가?

 

이것이 IMF가 나에게 만들어준 변화이고

많은 IMF의 구성원들이 느꼈던 변화이다.

당연히 여러분들도 변화할 수 있다.

 

거짓말쟁이들의 새빨간 구라에 현혹되지마라

쓸데없는 장미빛 환상에 사로잡히지도 마라.

 

듣고 기분 좋은 말이 아니라 진실을 들어라

피말리는 현실을 직시해라.

 

현실의 냉혹함을 본다면 절대로 이대로 안주하지 못할 것이다.

당장의 편안함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에 주목해라.

 

안되는 것은 없다.

돌파구는 반드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