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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해외의 픽업 이론이,
국내의 실정에 맞지 않다,
적용하기가 어렵다,
뜬구름을 잡는다는 등의 이야기를 접하곤 한다.
이럴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주체가
왜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클래식이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가?
해외의 TOP MBA를 졸업한 한 학생이 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교수님,
2년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은데,
막상 직장 생활을 시작하려니 막막합니다.”
“자네가 지난 시간 동안 배운 것은 단순한 지식의 집합 같은 것이 아니라네.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사례에 대한 적응력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기르는 훈련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지.
그러한 과정을 충실히 보냈다면 그 시간들은 결코 자네를 배신하지 않을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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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혹은 어떤 분야)에 대해 어설픈 이해도를 가진 이들은 픽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반응이나 생각, 행동에 따른 변수를 다양하게 설정해놓고,
그에 따른 예측 범위를 넓혀가는 것.“
그럴듯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맹점이 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비단 픽업계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산업군에서도 그 사례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이들이 가진 가장 주된 특징은,
인간의 상호작용을 “변수”로 보는 근본적인 시각의 한계로 인해,
종국에는 인간관계나 비즈니스 등에서 자기 파멸을 스스로 초래한다는 것이다.
당신이라면 당신을,
그리고 당신과의 상호작용을,
하나의 “변수” 따위로 취급하는 사람과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싶겠는가?
물론 당장 눈 앞에는 화려해보이고 겉치장이 그럴듯해보일 수는 있다.
온갖 기술로 치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른바 “기술만능주의”에 심취한 이들이므로,
그만큼 기술 자체에 대한 이해도는 일반인에 비해 깊으며(엄밀히 말하면 정교해보일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이 가진 근본적인 허점을 기술로 무마하려는 심리적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비해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진화를 거듭하여,
나름대로의 “존재 방식(Way of being)“을 내재화하고 있다.
따라서,
픽업 스킬을 따로 학습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오랜 시간 동안 기술만능주의에 입각한 행위를 할 경우,
그것을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므로,
선택은 기술만능주의에 빠진 이들이 하는 것이 아닌,
궁극적으로 상대방이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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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System) : 필요한 기능을 실현하기 위하여 관련 요소를 어떤 법칙에 따라 조합한 집합체.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올바른 철학과 방향성이 뒷받침되어야만 하며,
기술과 시스템에 대한 깊은 안목이 함께 어우러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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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에 쓰이는 그 어떤 기술에도 적용되는 첫번째 규칙은,
효율적인 픽업을 위해 적용된 시스템이 효율화(순기능, 효능)를 극대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두번째 규칙은,
비효율적인 픽업을 위해 적용된 시스템은 비효율화(역기능, 부작용)를 극대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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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 대한 진정한 안목을 가진 이들은 결코 기술만능주의를 주장하는 법이 없다.
하물며 잘못된 철학이 깃든 기술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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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한 기술은 기술이 아니다.
기만과 거짓, 속임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기술은 기교(Skill)이 아닌,
아츠(Arts)가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신의 마음가짐을 가져라.
유려한 화술을 구사하라.
타인을 지배하라.
우월함을 과시하라.
...
기교를 넘어 아츠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Under(아래에) + Stand(서다)
인간의 위에 서는 것이 아닌,
겸양을 기반으로,
타인의 아래에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심지어 종교적 가치들에도 전혀 위배되지 않는다.
수많은 종교에서는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면,
인간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스스로 신이 되어 인간을 아래에 두려고 하는가?
신의 피조물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신의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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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성공하는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며,
아직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접해보고 겪어본 결과,
실패하는 사람들은 어김 없이 다음과 같은 특성들을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는다.
배우지 않는다.
잘못된 가치관을 따른다.
흥미롭게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위의 예시는 경쟁자들(혹은 방해꾼들)의 등장 순서와도 흡사했다.
여러분께 있어서,
위의 예시에서 가장 위험한(혹은 어리석은) 케이스는 무엇일까?
바로,
생각하고 노력하고 배우면서 잘못된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직접 경험해보는 수밖에 없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위험성에 대한 사전 경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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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 초기치의 미묘한 차이가 크게 증폭되어 엉뚱한 결과를 나타내는 것. 1963년 유체역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수학적으로 모델화를 통해 일기예보의 이론적인 예측을 시도하던 미국의 기상학자 Edward Lorenz가 "갈매기의 날개짓 한번이 날씨를 영원히 변화시키기에 충분하다"고 한 데에서 유래된 말로 후에 형상에 따른 표현이 나비로 바뀌었다. 로렌츠의 모델은 우연적인 변화 요인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때때로 무작위의 상태가 되어감을 구체적으로 보인 것으로 이는 아주 사소한 것도 후에 큰 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과 장기예측은 그만큼 어렵다는 두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안정성(statability) 문제를 다루는 기법의 하나다.
부정적인 경험은 부정적인 경험을 낳는다.
지금의 작은 부정적인 경험이라 할지라도 미래의 큰 부정적인 경험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인생은 한정된 시간의 연속이며,
긍정적인 경험으로 가득 채우기에도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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惑世誣民
픽업계에 처음 입문하는 이들이라면,
특히 다음과 같은 4가지 부류를 조심해야 한다.
1)
컨텐츠가 가진 실제적인 가치는 1인데 비하여,
홍보/마케팅을 통해 그 가치를 10처럼 보이게 만들어,
9의 간격을 “위약 효과(Placibo Effect)”로 어느정도 메꾼 뒤에,
분식 회계를 통해 시간차를 가지고 가치의 격차를 좁혀나가려는 것이다.
※ 위약 효과를 통해 실제 병이 치료된 사례가 있을 정도로,
그 효과는 꽤 강력한 편이다.
경영과 비즈니스에서도 “불완전한 방식을 완전히 이행하는 것이,
완전한 방식을 불완전하게 이행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특히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이 분야에서는 그 효과가 더욱 강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위약 효과의 경우,
부작용 또한 더 강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예를 들어,
담배나 마약이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혹은 그것이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으로 효과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2)
컨텐츠가 가진 실제적인 가치는 1인데 비하여,
“이 컨텐츠를 통해 효과를 보게 되는 사람은 10% 뿐이다”와 같은 류의 심리적 기제(장치)들을,
컨텐츠의 사이 사이에 삽입하여,
문제에 대한 책임을 상대(소비자)에게 은연중에 전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달리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응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10의 잘못을 저질렀지만,
사전에 그럴듯한 분위기를 조성한 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12의 잘못을 미리 언급함으로써,
나중에 10의 잘못이 밝혀지더라도 그러한 잘못에 대한 저항을 줄이는 것이다.
이런 잡기雜技들은 한두번 위기를 모면하는데는 사용할 수 있겠으나,
매번 반복해서 사용한다면 신뢰를 잃게 될 것임은 자명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므로 본인은 이러한 잡기들을 배우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본인 또한 이러한 잡기들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으며,
올바른 원리를 이해하면 배우지 않아도 쉽게 간파할 수 있는 것들이다.
3)
컨텐츠가 가진 실제적인 가치는 1인데 비하여,
컨텐츠가 아닌 다른 요소에 의해 실제적인 결과가 나오는 경우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 또한 한정된 표본 집단을 상대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
이 경우,
컨텐츠를 전달하는 사람은 자신의 컨텐츠에 의해 그러한 결과가 나온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에게 해당되는 말일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컨텐츠를 통해 스스로 깨닫고 터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호빠 선수에게 가서 스스로 보고 깨닫고 터득하라고 주장하는 바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4)
1, 2, 3에서 언급한 방식을 보다 효율적으로 조합한 방식이다.
위 4가지 방식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예리한 이들은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그것은 컨텐츠를 접하는 이들로 하여금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위 4가지 방식은 어느 특정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며,
일종의 전형, 즉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은 일정 부분 자기 자신에 대한 투영投影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투영은 맹목적인 자기긍정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기 파괴를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 중의 하나다.
사실,
누구나 적게 혹은 많게 위와 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스스로 그러한 문제를 내포하지 않도록 항상 자기 자신을 경계해야만 한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없다면,
주변에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인데,
만약 위의 방식들이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다면,
그러한 관계 또한 자연히 와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의 근본根本이 쉽사리 바뀌지 않으리란 것도,
이해관계에 따라 하루아침에 쉽게 말을 바꾸리란 것도,
이제는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본인 또한 비슷한 부류들을 만난 적이 있으나,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그것이 단순한 실책일까,
아니면 필연적 결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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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해외의 픽업 이론이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말은,
"단지 그 사람에게 한해 적용하기 어렵거나“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만약 트레이너이거나 강사라면 자질을 의심해보아야만 한다.
무릇 “실력”이란,
"균형잡힌 시각(Balanced Insight)" 자체를 의미한다.
간혹 단순한 유머집이나 자신이 사용하는 멘트 몇 가지를 정리한 책을,
“루틴 매뉴얼(Routines Manual)”이라 부르는 이들이 있는데,
이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다.
IMFGLC에는 필드레포트만 해도 이미 10,000개 이상의 DB가 쌓여 있다.
전세계의 제휴, 협력 업체의 DB까지 합치면 수십만개에 달하는 DB가 쌓여 있다.
우리 강사진이 그러한 DB를 기반으로 허접한 루틴 매뉴얼을 급조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러한 결과물을 만드는 일은 전혀 과장 없이 하루나 이틀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전세계를 통해 다양하게 검증된 훌륭한 컨텐츠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양질의 국내 컨텐츠는 “이미” 무료로 배포해오고 있다.
무료 컨텐츠를 제공 받는 이들이 무료 컨텐츠를 더 빨리, 더 많이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거나 조바심을 내는 모습은 참으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다.
IMFGLC에 한계란 없으니까..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
또한,
IMFGLC는 단순히 컨텐츠의 무료 배포를 넘어서,
수차례의 국내 최대 규모 수퍼 컨퍼런스 개최,
인터내셔널 수퍼 컨퍼런스 초청을 통해,
여러 차례 그 공신력을 입증한 바 있다.
참고로,
창조와 혁신, 모방과 답습의 차이는 단순한 수치의 차이가 아닌,
시대적 상황에 따른 상대적 관점에 따라 비추어보아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아직까지 유치한 기네스북 놀이나 하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루틴 매뉴얼의 의미를 모르는 이들이 루틴 매뉴얼을 비하하거나,
혹은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사람들이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는,
루틴이 부족해서도,
수많은 변수들을 예측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첫째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며,
둘째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기 때문이고,
셋째는 원하는 수준을 하루 아침에 이루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며,
가장 중요하게는 현재의 자기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는 동시에,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기본적인 이론은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만 한다.
IMFGLC는,
단순히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서,
국제적인 시야와 안목을 가질 수 있을 때,
그 자체로 높은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수년 전부터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오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해외 이론을 맹목적으로 따르라는 것이 아닌,
IMFGLC를 접하는 모든 분들께서,
국경에 얽매이지 않고,
국내와 해외를 아우르는 넓은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픽업이란,
단순히 "하는 것(Doing)"에 대한 것도,
혹은 "되는 것(Being)"에 대한 것도 아닌,
"보는 것(Seeing)""에 대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무엇이 매력적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어야,
스스로를 매력적으로 가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스스로를 빛낼 수 있다.
특히,
“시야視野”를 가질 수 있을 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힘은,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매순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기술의 기계적인 적용이나 외적인 치장, 성형 등은 결코 완벽한 솔루션이 되지 못하며,
시야를 가질 수 있을 때,
그 사람의 매력은 단순히 한시성을 넘어서 영속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한 시야가 다양할수록,
깊이가 있을수록,
더 강력해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음 칼럼에서는,
어떻게 하면 다양하고 깊이 있는 시야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몇가지 팁을 적어보도록 하겠다.